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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한인약사, 그들도 우리의 회원이다"

김진우 기자   2017-06-14 12:00:01

대한약사회는 전국에 16개 시도지부를 두고 있다. 하지만 `해외특별지부'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약사회원은 그리 많지 않다. 대한약사회의 승인을 받은 해외특별지부는 모두 미국에 5개가 있다. 몸은 비록 멀리 떨어져 있지만 한국인으로 그리고 약사로서 자긍심을 갖고 살아가는 대한약사회의 당당한 `회원'이다. 오는 9월 한국에서 열리는 FIP서울총회를 맞아 해외한인약사의 현주소를 살펴본다.<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①해외한인약사회 태동 
②해외특별지부 현황
③인터뷰(유창호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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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로 나간 한인약사들이 몇 명이나 되는지 통계로 잡힌 것은 없다. 약사라는 직업을 영위한다고 해도 한국과는 달리 약사회의 존재 필요성이나 소속감이 상대적으로 약한 탓에 정확한 약사회원 실태 파악은 쉽지 않다. 
 
특히 약사들이 가장 많이 진출한 것으로 알려진 미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의 경우에는 단서를 찾기조차 힘들다. 
 
그나마 미국은 뉴욕·워싱턴·캘리포니아·시카고·필라델피아에서 1970년대 들어 한인약사회가 조직되고 일정 규모를 이루면서 대한약사회로부터 해외특별지부로 승인돼 대한약사회와 교류를 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해외한인약사 심포지엄을 연 1회 개최하고 있으며 올 9월 한국에서 열리는 FIP서울총회에 미주한인약사총연합회 소속 한인약사들이 고국을 찾을 계획이다. 
 
지금 해외한인약사회는 세대교체가 활발히 진행 중이다. 
 
우려되는 것은 세대교체 과정에서 한국 국적이 아닌 미국 국적을 가진 한인들이 주류를 형성하면서 오는 정서적 괴리감이다. 따라서 대한약사회 차원에서 해외에 있는 한인약사들과의 관계를 지금보다 더 강화하는 연결고리나 장치의 필요성이 요청되고 있다. 


美 정부 상대 투쟁, `외국인약사 검정고시' 제도화
1983년 총연합회 출범으로 중앙-지부 조직 완성


기회의 땅에서 절망으로

한국약사가 `기회의 땅' 미국으로 본격적으로 진출한 때는 1971년 미국이 문호를 개방하면서부터다. 
 
당시 미국에 의료인력이 부족해 한국을 비롯한 외국 국적의 의사, 약사, 간호사들이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하지만 미국은 기회의 땅이 아니었다. 특히 약사에게는 그랬다. 문호는 개방했지만 미국 약사면허시험을 치를 수 없었다. 의사나 간호사는 인턴십을 통해 취업이 가능했지만 약사는 아니었다. 이유는 한국의 약대 학제가 4년인데 반해 미국은 6년제를 채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에 가면 당장 약국을 차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냉정한 현실 앞에 무너졌고 미국 약대에 편입한다고 해도 비싼 학비를 감당하지 못하고 당장의 생계를 이어가야 하는 처지에 놓인 적지 않은 한국인 약사들은 세탁소에 취업하거나 심지어 막노동까지 해야 했다. 

권익 확보 위해 한인약사회 조직

한국인의 오기와 끈기 그리고 추진력이 마침내 발동했다. 시카고(1972년), 뉴욕(1973년), 캘리포니아(1973년), 워싱턴(1974년) 등 4개 지역의 한인약사들이 회를 만들어 본격적인 투쟁에 나섰다. 필라델피아한인약사회는 1983년 뒤늦게 출범했다. 

1세대 한인약사들은 외국의 약대 졸업자들이 편입을 거치지 않고 검정고시에 합격하면 면허를 딸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 기간이 무려 10년이다. 
 
한인약사회를 중심으로 한 한인약사들은 워싱턴과 세크라멘토 국회의사당 앞에서 시위를 진행하며 검정고시의 필요성을 강하게 요청했다. 
 
꿈쩍도 하지 않던 미국 정부는 이같은 요구를 수용했고 마침내 전미연합약정국(NABP)을 통해 1982년 6월부터 '외국인약사 검정고시(FPGEE)`를 도입한다고 발표했다. 1세대 한인약사들이 주도적으로 움직인 결과물이었다. 
 
이때부터 한국을 비롯한 외국의 약대 졸업자들이 대거 미국으로 이민을 갔으며 고생의 땅은 말 그대로 기회의 땅이 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