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로 가는 길 제 10 : 고려인 후손150년만의 귀향-모스코바에서 평양을 거쳐 부산까지.

 

 

 

러시아는 지구표면 육지의 약 1/6을 차지 하는데 우리는 그 크기를 상상하기 어렵다. 북유럽의 핵심 도시 샌 피터스버그항구에서 동쪽 끝 사할린까지 동서로 약 1KM,  남북으로 약 4000Km에 걸쳐 유라시아 대륙의 약 40%를 점하고 있는 대지는 한국의 남북한 합의 100배이고 중국과 미국을 합한 것 보다 더 넓다. 넓은 대륙은 극한의 추위 때문에 생활 환경은 좋지 못하다. 이 넓은 나라를 공격한 프랑스의 나폴레온은 알프스를 넘어 모스코바를 점령 햇지만 항복 받지 못하고 돌아 나오면서 겨울에 점령군의 대부분을 잃는다. 1992년 공산주의 해체로 10개가 넘는 중앙 아시아의 이 민족들이 독립해 나가고 미국과의 경쟁은 옛 얘기가  되었고 중국의 부상을 견제 해야하는 입장에 있다.  나라가 영욕을 겪으면서 우리 한민족의 이주 역사도 러시아에서 큰 수난을 당하게 된다.

 

 

 

1900년대 전후 쏘련의 연해주, 사할린에 많은 이주민 들이 한반도를 떠나 이주해 살았다. 1937년 스탈린은 일본이 강해지며 쏘련이 위협을 느껴 지식인들을 제거하고 두만강쪽의 고려인을 중앙 아시아 허허 벌판으로 강제 이주를 단행했다. 17만명이 떠나 2 5천명이 질병과 기아로 죽고 남은 생명들은 살기위한 처절한 싸움이 황무지의 동토에서 시작되었다. 살아 남은 자는 황무지를 살려 집단 농장을 만들어 갔고 후손들은 더 나은 지역으로 뿔뿔히 흩어졌다. 2014년 여름 유라시아에 흩어져 있는 고려인의 후손 25명은 김 니콜라예비치를 단장으로 자동차 7대에 나눠 타고 그들의 선조들이 한반도를 떠나 연해주에 살다가 중앙 아시로 강제 이주 당해 살면서 고생했던 역사의 현장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서 떠나 올때는 한 민족이 지금은 나눠져 대립하고 있는 북한땅을 거쳐 비무장 지대를 지나 한국땅을 밟고 대륙의 끝 부산까지 가면 15000Km 장장 40여일이 필요하다.  단장은 3세지만 지원자들은 4, 5세까지 합류했다. 물론 출발때 까지는 북쪽땅을 밟을 허가도, 비무장지대를 넘을 퍼밋도 가지고 있지 않고 출발했다.

 

 

 

모스코바에서 출발한 일행은 사마라라는 시를 거쳐 6일만에 고려인 17만명이 살고 있는 고려인의 중심도시 우즈베케스탄 타슈켄트에 도착했다. 김 단장도 여기가 고향이고 많은 참가자 들의 조부모나 친척들이 살고 있는 고장이다. 부모님의 묘소도 찾아보고 20년 만에 만나보는 할머니, 사촌 들과의 조우도 있었다. 환영회에는 우리민족 고유의 장고와 춤들이 선보이고 한국과 북한의 영사관 직원들도 나와 다정하게 노래도 교환했다. 5명의 고련인 후손이 함류하고 카자스탄으로 향했다. 작은 도시 알마티에서 3일 휴식하고 우슈토베라는 도시에 도착했다. 이도시는 고려인들이 강제이주 1달만에 도착한 역사적인 마을이며 지금도 고려인 마을이 있다. 이주시 희생된 고인들을 기리는 기념탑도 있다. 고려인 4세인 한 참가인의 할머니도 이곳에서 만났다. 차씨 할머니는 86세인데 한국어가 서툴다. 근처에는 독립운동가 홍범도장군을 기리는 공원도 있다. 89세의 한 할아버지는 지금도 그때를 기억하며 기차속에서  사망자가 발생하면 역에 내려놓고 그냥 떠났다고 한다. 우즈베키스탄에는 130개 민족이 있는데  우슈토베곳곳에는 고려인의 한국학교도 여전히 운영되고있다.

 

 

 

김단장은 22년전에도 이 길을 계획해 실천 했지만 북한 국경까지 갔다가 아쉽게 돌아 가야했다. 이때 참석했던 친구들을 여기서 다시 만나 이번엔 꼭 성공할 것을 기약했다. 중앙아시아 중부를 갈때는 백야라 저녁 늦게까지 해가 떠있어 20시간을 운전도 하고 길을 잃어 계획에 없게 야영을 하기도 했다. 키르키스탄 비슈케크에 도착했다. 이 나라에도 2만명의 고려인이 산다. 1992년 쏘련은 무너지고 나눠진 작은 나라에서 살던 고려인들은 다시 러시아나 어디로  떠나야 했는데 한국이나 북한은 그때도 이들을 받아 드릴 준비가 되 있지 않았다. 러시아는 노동인구를 받아드리기 위해 이주비를 주면서 이주를 환영했다. 일행은 중앙 아시아를 지나 다시 러스아 땅 로보시비리스크 도시를 지나 바이칼 호수의 도시 이르쿠츠크에 도착해 휴식을 취했다. 아름다운 호수가의 이도시를 지나 일주일후 연해주 인근 하바로스크에 도착했다. 언론이 관심을 보이고 고려인의 역사를 알고 선조들의 어려움을 이해 해 보고자 이 일을 시작했다고 대답했다. 이제 제일 중요한건 북한 입국비자를 받을 수 있는가 가 문제다. 모스코바를 떠난지 28일만에 우수리스크에 도착했다. 이곳이 해외 이주민들이 처음 제일 많이 살았던 곳이다. 이주의 역사가 한눈에 집약되 있는 전시관도 있다.

 

 

 

북한입국 비자가 3시간이나 기다린 끝에 어렵게 해결 되었다. 한국에서 온 촬영팀은 다 내렸고 타고온 차는 하산 역에서 기차로 운반 된다.  러시아 하산역에서 북한 나진까지는 기차길만 운영된다. 두만강역에 도착해 관계자들의 환영을 받았다. 생전 처음보는 북한땅의 낫선모습을 보며 선조들이 떠나 왓을 고향을 연상했다. 시골길을 지나 청진시를 거쳐 백두산으로 올라갔다. 민족의 영산은  감동속에 닦아왔다. 년중 50여일만 맑게 보인다는 백두산이 눈앞에 전개 되었다. 일행은 백두산을  내려와 원산에 도착했다. 원산은 마싱령 스키장등 관광사업이 한창이다. 청소년회관에 들려 환영을 받았다. 평양에 들어 가서는 만수대 의사당으로 안내되어 북한주재 러시아 대사의 환영도 받고 고위층의 인사도 받았다. 소년궁전에 초대받고 여기서 차량 3대를 기증했다. 고려인 대장정을 기억해 주라는 뜻에서이다. 계속 내려와 개성에 도착했다. 간단한 환영행사에 참석하고 개성공단에서 환송식, 이제 비무장 지대를 넘는 어려운 일이 남아있다. 북한에서의 9일간, 150년만에 찾아온 고향에서의 만남은 너무 짧다. 군사분계선을 넘어가며 여기는 누구의 땅이냐고 물었다. 4Km의 분계선을 넘어 한국땅에 도착하니 많은 환영객이 나와 환영해 주었다. 드드어 해 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남은 여정을 소화 시키고 러시아로 돌아간다. 고향을 등지고 타국을 떠돌던 선조들이 떠나왔던 땅 지금은 두개로 나눠져 반목하고 있다. 빨리 통일이 와서 마음 편히 남북을 자유 왕래 할 수 있는 날이 오길 빈다. 고려인의 후손들이 모스코바에서 부터 15000Km를 달려와 남긴 말이다. (7202018)